주원섭 산림교육전문가

[시니어신문=장한형 기자] 경기도 용인에서 축령산까지 자동차를 타고 1시간 20분이 걸립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긴 시간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출근 시간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내비게이션에 ‘회사’라고 찍고 기계가 안내하는 대로 길을 따라 가는 그 기분,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회사는 특별합니다. 문도 없고, 벽도 없습니다. 그와 일하는 동료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직장, 바로 ‘숲’입니다. 숲해설가로 일하는 주원섭씨는 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나도 가야 할 회사가 있구나, 나의 사무실은 숲이지. 어제 꽃망울을 맺었던 그 꽃은, 잎이 돋기 시작한 나무는 오늘 아침 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그를 설레게 합니다.

산림청 직원이거나 생물선생, 공무원이 아니었을까?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전직은 뜻밖에도 군인이었다. 늘 군복을 입고,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채 군인으로 34년을 살다가 육군대령으로 예편했다.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숲해설가인 그에게서 군인의 흔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들과 숲에 나고 자란 풀과 나무, 야생화와 친구 되어 대화를 나누고, 관찰하고, 그 기록들을 모아 한 권의 책(「곰취의 숲속일지-오늘도 숲에 있습니다」 자연과생태)으로 엮어냈다면 더욱 놀란다.

주원섭씨가 군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강원도 영월 상동고등학교 3학년 때 그는 전교 학생회장이었고, 한백산에 주둔한 공수부대에 1일 입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었다. 그때 만난 장교 한 분이 ‘너 앞으로 뭐가 될 거냐?’고 물어봤을 때도 대번 ‘군인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바로 이듬해 졸업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입대했다.

군생활은 그의 적성에 딱 맞았다. 군생활 34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중간에 제대를 해야겠다, 잘못 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완벽한 체질이었다. 전역하고 나서도 군을 홍보했고, 국방일보에 기고문을 게재했다.

소중한 가족, 그리고 동료

34년 군복무하면서 그는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동료들과 조우했다. 중대장, 대대장에 이어 연대장을 거치던 시기가 군생활의 절정이었는데, 특히 소대장 복무시절 만났던 부하와 동료들이 기억에 남는다. 상관과 부하의 관계로 만났지만, 나이는 그들과 비슷했다. 같은 공수부대 특전사 팀원이었던 20~30명의 동료 중 15명은 그가 부임하는 곳마다 찾아왔고, 같이 놀러 다녔고, 부부가 함께 만나면서 지낸 골수 회원들이다. 3년 동안 팀장을 맡으면서 그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도 만나면 2박3일 군대 얘기로 날을 지샐 정도로 정과 추억이 넘쳐난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은 재능이 뛰어나고, 심성이 곧다. 주원섭씨는 “내가 회사를 운영하거나 기관장이 된다면 꼭 함께 일하고 싶을 정도로 신뢰가 가는 사람도 여럿 있다”며 애정을 드러낸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라고 생각하는 그는 그들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도 신의와 신뢰 때문이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들과 신뢰를 유지하며 인연을 더욱 소중하게 이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중위 때 결혼했다. 중위 봉급으로는 살림이 팍팍했다. 금전적으로는 늘 마이너스였다. 대위로 승진하고서 살림이 피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아이들한테도 마찬가지다. 가족과 헤어져 있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들과 딸이 살갑게 대하고, 그도 가정에 신경을 많이 쓰니 가족 모두 즐겁고 애틋하며 행복하다. 예전에 함께 누리지 못한 시간들이 많았기에 지금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없이 소중하다.

최근 출간한 책 「곰취의 숲속일지-오늘도 숲에 있습니다」를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됐다. 성우로 활동하는 아들과 뮤지컬 연출가인 딸, 그리고 그와 함께 숲해설가로 행복하게 일하는 아내가 책 내용을 꼼꼼히 짚어가며 교정을 봐줬다. 가족 모두 크고 작은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격려해 준 덕에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 것 같아 몹시 만족하고 행복하다.

자연과 야생화에 매료되다

1973년 입대했다. 처음엔 그저 군대생활에 충실했다. 승진해 지휘관이 된 이후 자신과 부대원, 상관의 관계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 산과 들로 나가 자연을 둘러보는 게 습관이 됐다. 그리고 스르륵 야생화에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계속 이어지는 야전생활, 그 속에서 야생화의 이름을 기억하고, 녀석들의 성질을 이해하고, 카메라에 담아내며 마음을 씻었다. 그 작은 야생화가 품어내는 작고 아름다운 매력에 그는 흠뻑 빠져들었다. 틈나는 대로 산과 들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기록했다. 행여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생기면 책을 찾아 읽고 메모했다. 그렇게 15년간 틈틈이 야생화를 공부했다. 취미삼은 공부라지만 꽤 깊이 들어갔다.

2006년 강원도 양구에 주둔한 21사단 백두산부대에서 부단장으로 일할 때였다. 다음해 예편을 앞두고 1년간 ‘직업보도’ 기간이 주어졌다. 군인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재취업이나 전직을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라고 배려하는 기간이다.

대부분의 군인들이 직업보도를 주관하는 국가보훈처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하지만 그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숲연구소에 가면 숲과 관련한 어떤 길이 있지 않을까?’ ‘양구 대암산에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니 산불감시원은 어떨가?’ 마치 야생화가 그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산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내는 결사반대였다. “육군 대령 출신이 산불감시원이라니?” 아내는 그가 산에 들어가는 게 탐탁찮았는지도 모른다. 34년 동안 산에 생활했으면 됐지, 예편한 뒤에도 산에서 살고 싶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직업보도를 위해 수원에 있는 국가보훈처로 행했다. 그곳에서 그는 숲해설가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담당 컨설턴트와 의논 끝에 숲해설가가 되기로 작정한다.

곰취와 아내, 특효약 같은 존재

2007년 2월부터 1년에 걸쳐 숲해설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야생화에 대한 기본 정보와 지식이 풍부했으니 교육과정이 끝나자마자 사단법인 숲연구소의 야생화 강사로 투입됐다. 그곳에서 상임이사로 3년간 근무하면서 목본류, 초본류, 식물학 강의를 했다. 숲해설가라기보다 생태와 산림교육전문가 인증기관의 강사활동이 주 업무가 된 셈이었다.

그는 숲해설가 과정을 수료한 후 아내에게도 숲해설가 교육을 권했다. 삐딱하게 생각하던 아내는 숲해설가 과정에 참여하면서 일그러진 미간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왜 야생화에 매료됐는지 이해하게 됐다.

아내와 남편은 손을 잡고 숲으로 향한다. 남편이 숲을 거닐며 야생화 사진을 찍을 때 아내는 산기슭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요즘엔 아내의 야생화 사랑이 더 짓궂다. 2007년 4월 27일은 부부에게 뜻 깊은 날이다. 숲연구소가 숲해설가 인증기관이 됐고, 부부는 숲해설가 인증기관에서 자격증을 받은 ‘부부 숲해설가’ 1호로 기록됐다.

주원섭 씨는 인터넷 카페 ‘곰취와 숲․나․들․이’에서 ‘곰취’라는 이름을 쓴다. 양구 대암산을 즐기던 남편에게, 대암산의 명물 ‘곰취’란 이름을 선물한 사람이 아내다. 곰취의 꽃말이 ‘특효약’이란 걸 최근에 알았다. 아내에게 그는 인생의 ‘특효약’이다. 그래서 아내의 카페 이름 ‘각시취’가 참 잘 어울린다.

카페 이름 ‘숲․나․들․이’의 말 풀이도 의미심장하다. ‘생태와 무들의 생리, 풀의 생존전략, 들풀의 미를 야기로 풀어본다’는 뜻을 품었다. 첫 글자를 조합하니 ‘숲․나․들․이’가 됐다. 지금은 숲과 나무, 들풀, 그리고 생태를 공부하는 850명의 순수열정파 회원들이 찾는 곳이 됐다.

그는 “아내와 취미를 같이 한 결정은 참 잘했다”고 말한다. 소소한 일상을 아내와 함께 하니 숲해설가로 근무하는 5일 외에 쉬는 날에도 외부 강의에 나설 수 있다. 강의에 앞서 차례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 정성들여 준비한 원고를 들여다보며 나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 만큼 강의 1주일 전 반드시 현장답사를 거친다. 같은 장소라도 계절이 다르면 꼭 살펴보고 새로운 것을 찾아 살아 있는 강의를 하려고 애쓴다. 번거롭고 힘들지만 청중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답사와 공부를 통해 충실한 강의을 이어간다.

숲에 대한 향학렬도 대단하다. 매주 한 권의 책을 구입하는데, 숲해설가 수료 직후 ‘숲’자가 들어간 책은 거의 모두 사서 봤다. 3번의 정독으로 책 내용을 완전히 체화한다. 그렇게 2~3년 공부하며 숲에서 살았더니 말문이 막히는 질문은 거의 없다.

이제는 초보 숲해설가들도 교육한다. 그가 고안한 숲해설가 교육법 ‘4S Action’이다. 첫째, 스톱(Stop). 멈춰라, 그래야만 볼 수 있다. 둘째, 싯다운(Sit down). 앉아라, 눈높이를 맞춰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셋째, 씨&스터디(See&스터디). 보면서 공부하라. 넷째, 시즌(Season). 4계절을 봐야 비로소 모든 것을 본 것이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4S Action’이 중요하지 않은가! 역시 자연은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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